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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각인: 왕좌의 기억 공개

by 이작가 · 하이 판타지 ·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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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 전 19권 하이 판타지 · 잊혀진 운명의 재림

파멸의 각인: 왕좌의 기억

몸에 새겨진 '잊힌 예언의 각인'과 함께 태어난 '잊혀진 자' 카엘. 자신을 쫓는 제국 심판관의 추적을 피하며, 그는 예언이 단순한 구원이 아닌, 세상을 뒤흔들 파멸이자 동시에 잊혀진 왕좌의 재림을 예고하는 최후의 경고임을 깨닫는다.

12. 간주 1 - 천 년 전의 밤

간주 1 — 천 년 전의 밤

그날, 신들은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어느 누가 예고한 이별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별이었기에,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일처럼 조용히 일어났다. 신들은 자신들이 왜 떠나는지 인간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이미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들은 떠나기 전에 자신들이 사용하던 모든 언어를 세상에 두고 갔고, 그 언어들은 인간의 입술에 옮겨 붙어 오래된 격언과 짧은 기도와 이해할 수 없는 자장가의 형태로 남았다. 그 언어의 조각들은 지금도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혀끝에 머물러 있다.

그날 저녁, 하늘은 평소보다 투명했다. 구름이 없었고, 바람이 없었고, 새의 소리도 없었다. 세상 전체가 숨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륙의 일곱 곳에서 동시에 예언자들이 깨어났다. 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모두 같은 것을 보았다. 일곱 개의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 빛들은 별처럼 멀지 않았고, 불처럼 뜨겁지 않았으며, 달처럼 차갑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새로운 종류의 존재였다. 왕좌였다.

왕좌는 의자가 아니었다. 왕좌는 약속이었다. 신들이 떠나며 세상에 남긴 마지막 약속. "우리가 사라져도 세상은 계속 될 것이다. 다만 세상이 자기 자신을 잊지 않도록, 너희에게 일곱 개의 기억 장치를 남긴다. 이것들이 너희의 왕좌가 될 것이다. 왕좌는 권력이 아니라 기억이다. 왕좌에 앉는 자는 그 권역의 기억을 책임진다."

일곱 개의 왕좌 중 여섯 개는 곧바로 호명되었다.

첫 번째 왕좌는 동방의 사막에 내려앉았다. 그곳에서 한 명의 예언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그 왕좌를 받아들였고, 그의 이름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사막의 왕조에서 전해졌다. 두 번째 왕좌는 서방의 바다 위에 내려앉았다. 바다의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 외로운 바위섬, 그 섬의 유일한 주민인 늙은 어부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세 번째는 남방의 열대림으로, 네 번째는 북방의 빙원으로, 다섯 번째는 중앙의 평원으로, 여섯 번째는 지하의 광맥으로 내려앉았다. 각자의 왕조가 세워졌고, 각자의 이름이 호명되었으며, 각자의 기억이 그 땅과 함께 숨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곱 번째 왕좌는 달랐다.

일곱 번째 왕좌는 어느 한 땅에 내려앉지 않았다. 그것은 여섯 개의 왕좌가 자리잡은 뒤에도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왜냐하면 일곱 번째 왕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땅 위의 한 가문, 한 혈통을 향해 내려왔다. 그 가문의 이름은 지금은 어느 책에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당시의 예언자들은 그 가문을 '기억을 짊어진 자들'이라 불렀다.

기억을 짊어진 자들의 가문에는 그날 밤 두 명의 후보가 있었다.

한 사람은 이미 성인이 된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나중에 '첫 번째로 잊혀진 자'가 되지만, 그날 밤에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길고 복잡한 신들의 언어로 된 이름이었다. 그는 가문의 장자였고, 스물일곱 해를 살았고, 이미 어떤 전쟁에서 세 번의 상처를 입은 자였으며, 그 상처들을 치유하지 않은 채로 살아왔다. 그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자신이 기억해야 할 것들의 흔적이라 믿었다.

다른 한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아홉 달 동안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그날 밤 그를 낳지 않았다. 낳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일곱 번째 왕좌가 내려오는 그 순간, 어머니의 몸 속에 있던 그 영혼이 왕좌의 부름에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영혼은 어머니의 자궁을 잠시 떠나, 왕좌의 빛 속에서 형의 어깨 위에 앉았다. 그것이 잠시의 일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잠시가 천 년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왕좌가 물었다.

"너희 둘 중 누가 나의 이름이 될 것이냐."

형은 동생을 보았다. 동생은 형태가 없는 빛의 조각이었고, 그 빛의 조각은 형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형은 그 미소를 알았다. 그 미소는 "형이 먼저 하세요"라고 말하는 미소였다.

그러나 형은 왕좌를 받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날 밤 왕좌의 진짜 무게를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왕좌는 기억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권역 전체의 모든 잊혀질 것들에 대한 책임이었다. 한 번 왕좌의 이름이 되면, 그는 죽을 때까지 모든 잊혀진 이름, 모든 잃어버린 얼굴, 모든 꺼진 불씨를 자신의 안에 담아야 했다. 그것은 끝이 없는 무게였고, 그 무게는 형의 이미 상처난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형은 왕좌에게 말했다.

"나는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동생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그 영혼은, 어쩌면 이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아무것도 잊어버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안에는 기억의 공간이 아직 비어 있다. 나는 이 공간을 이미 나 자신의 상처들로 채워버렸다. 그러니, 왕좌여, 나의 동생을 기다려 달라. 그가 태어날 때까지."

왕좌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답했다.

"나는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기다림에는 대가가 있다. 내가 이 세상에 내려오는 순간은 오직 오늘 밤뿐이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나는 다시 올 수 없다. 그러니 내가 기다리려면, 이 세상의 어느 누군가가 나 대신 잠들어야 한다. 그 누군가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그의 잠 속에서 기다릴 것이다."

형은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잠들겠다."

그러나 왕좌는 형의 대답을 받지 않았다.

"너는 잠들 수 없다. 너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의 잠은 꿈으로 가득할 것이고, 그 꿈들이 나의 기다림을 방해할 것이다. 나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너는 잠들지 않는다. 대신 너는 살아야 한다. 나의 동생이 태어나 자라나 내가 될 준비를 마칠 때까지, 너는 이 세상에 남아서 그를 보호해야 한다. 한 몸으로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으니, 너는 여러 몸을 거쳐가며 살게 될 것이다. 몸 하나가 늙으면 다음 몸으로 옮겨가고, 그 몸이 늙으면 또 다음 몸으로. 너는 천 년을 살 것이다. 그리고 그 천 년 동안 너는 너의 원래 이름을 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름은 한 몸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름 없는 자로, 여러 얼굴의 자로, 천 년 동안 네 동생의 그림자를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형의 얼굴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손이 작게 떨렸을 뿐이다.

"받아들인다."

그 한 마디와 함께, 형의 원래 이름은 그의 혀에서 빠져나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 잊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는 '첫 번째로 잊혀진 자'가 되었다. 세상에 남아 자기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첫 번째 인간.

그리고 일곱 번째 왕좌는 빛으로 변해 형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동생의 영혼을 감쌌다. 왕좌와 동생은 하나의 빛이 되었고, 그 빛은 하늘 아득한 곳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잠들었다. 천 년의 잠이 시작되었다.

동생의 어머니는 그날 밤 자신의 뱃속이 비어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웃었다. 자신의 아이가 신들의 마지막 선물과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슬픔이 아니라 자랑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가문의 다른 여자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받았다. 천 년 뒤, 이 가문의 어느 여자가 다시 아이를 갖게 될 때, 그 아이가 바로 돌아온 동생일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를 잘 길러야 한다. 그 아이가 왕좌와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약속이 대를 이어 전해졌다. 천 년 동안. 대부분의 후손들은 그 약속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가문을 떠났고, 가문은 점점 작아졌다. 그러나 매 세대마다 단 한 명의 여자가 그 약속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 전했다. 그 여자들 중 마지막이 바로 엘리아나였다.

그리고 그 천 년의 밤, 형은 몸을 바꾸어가며 세상 곳곳을 떠돌았다. 그가 몸을 바꿀 때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일부를 잃었다. 어떤 몸에서 그는 웃는 법을 잃었고, 어떤 몸에서 그는 우는 법을 잃었으며, 어떤 몸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잃었다. 천 년이 지나갔을 때, 그에게 남아 있던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동생을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조차 너무 오래 홀로 있었기에 병들어 있었다. 병든 기다림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으로 변해갔다. 그는 동생을 보호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동생이 왕좌에 앉는 것을 막고 싶었다. 왜냐하면 동생이 왕좌에 앉는 순간, 그의 천 년의 존재 이유가 끝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끝을 원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것이 침묵의 기사단이 탄생한 이유였다.

형은 자기 자신의 두 마음을 조직화했다. 동생을 보호하는 역할과 동생을 방해하는 역할을, 그는 기사단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묶었다. 침묵의 기사단은 그래서 외부에서 보면 하나의 조직처럼 보였으나, 내부에서는 언제나 서로를 배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왕좌를 지키는 자들이기도 했고, 왕좌를 잠재우려는 자들이기도 했다. 그 모순이 천 년 동안 그들의 몸에 새겨졌고, 마침내 그들의 문양에까지 나타났다. 부러진 혀. 말을 잃은 입. 그것은 두 가지 뜻을 한꺼번에 말할 수 없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 자들의 문양이었다.

천 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북방의 어느 붉은 달 아래에서, 한 일곱 살 아이의 입이 천 년 전의 예언을 다시 읊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늘 아득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왕좌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