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작가 · 하이 판타지 · 19화
목차
1. 프롤로그 - 잊혀진 예언 2. 1장 - 변방의 소년 3. 2장 - 붉은 달의 밤 4. 3장 - 은빛 탑으로 가는 길 5. 4장 - 잊혀진 길 6. 5장 - 어머니의 마지막 7. 6장 - 은빛 탑 8. 7장 - 다섯 날의 시험 9. 8장 - 형제의 얼굴 10. 9장 - 일곱 번째 왕좌 11. 에필로그 - 대장간의 불 12. 간주 1 - 천 년 전의 밤 13. 간주 2 - 보르의 화로 14. 간주 3 - 엘리아나의 추방 15. 간주 4 - 미라엘의 첫 순례 16. 간주 5 - 침묵의 기사단의 기원 17. 외전 1 - 동방의 돌 18. 외전 2 - 미라엘의 다음 길 19. 외전 3 - 한바르의 기록간주 3 — 엘리아나의 추방
은빛 탑의 법은 오래되었다.
어느 정도로 오래되었느냐 하면, 그 법을 만든 첫 번째 탑지기의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탑의 법은 스물일곱 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중 마지막 조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탑의 가장 깊은 방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자는, 탑의 가장 높은 의무를 지게 된다. 깊은 방에서 본 것을 바깥으로 가져가려 하는 자는 탑의 적이 된다. 탑의 적이 되는 자는 추방된다. 추방은 죽음보다 긴 형벌이다. 왜냐하면 추방된 자는 자기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탑을 떠나지만, 탑은 그 기억을 쓸 수 없는 언어로 바꾸어 그의 머릿속에 새겨 넣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기억을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상태로 살아야 한다."
엘리아나는 그 마지막 조항을 여러 번 읽었다. 스승 세라누스가 처음으로 그녀를 탑의 세 번째 원에 받아들였을 때, 그는 그녀에게 탑의 법을 한 글자씩 외우게 했다. 그녀는 스물일곱 개 조항을 전부 외웠다. 가장 마지막 조항도. 그러나 그 조항을 외우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 그 조항의 대상이 되리라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엘리아나가 처음 탑에 들어온 것은 열다섯 살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방의 작은 마을에서 빵을 굽는 여자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고, 엘리아나가 그에 대해 물을 때마다 어머니의 눈은 먼 곳을 보았다. 그 먼 곳이 어디인지 엘리아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된다. 그곳은 하늘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잠들어 있는 일곱 번째 왕좌의 자리였다. 엘리아나의 아버지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한 줄기 빛이었고, 그 빛은 천 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여자의 몸 안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났다. 엘리아나는 그 빛의 자식이었다. 기억을 짊어진 자들의 가문의 마지막 직계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엘리아나에게 말하지 않은 채 죽었다. 엘리아나가 열세 살이 되던 해 가을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이 년 동안 혼자 살았다. 빵을 굽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안에서 이상한 것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손끝에서 가끔 작은 빛이 새어 나왔고, 잠들면 기억에 없는 얼굴들이 꿈속에 나타났고, 그녀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세상의 공기가 한 번씩 진동했다. 그녀는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은빛 탑의 사절이 그녀를 찾아온 것은 그녀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봄이었다. 사절은 한 명의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엘리아나에게 자신을 '은빛 탑의 일곱 번째 원'이라고 소개했다. 탑의 원은 깊이의 단위였다. 첫 번째 원은 탑에 갓 들어온 제자들의 자리였고, 원이 깊어질수록 탑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일곱 번째 원은 탑지기 바로 아래의 자리였다.
사절은 엘리아나에게 말했다.
"탑은 너를 오래 기다려왔다. 너의 어머니가 죽기 전에 너의 이름을 탑에 기록해두었기 때문이다. 너는 탑에서 배울 것이 많다. 네 안에서 자라고 있는 그 힘은 병이 아니다. 그것은 선물이다. 다만 그 선물을 다룰 줄 모르면, 그 선물이 너를 다룰 것이다. 탑으로 오겠느냐."
엘리아나는 그날 저녁 탑을 향해 떠났다. 어머니가 구워놓은 마지막 빵을 한 조각 가방에 넣고서. 그녀는 그 빵을 탑에 도착한 뒤에도 며칠 동안 먹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에게서 받은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탑에서의 생활은 엄격했다. 엘리아나는 첫 번째 원에서 세 번째 원까지 평범한 제자들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스승 세라누스는 그녀의 재능을 인정했으나, 동시에 그녀에게 경고했다.
"너의 재능은 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 가문의 것이다. 너는 가문의 기억을 몸에 지니고 태어났고, 그 기억이 지금 너를 통해 작동하고 있다. 너는 그 기억의 크기를 두려워해야 한다.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 기억에 먹힌다."
엘리아나는 그 경고를 이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 기억의 크기를 사랑했다. 그녀는 탑의 법이 금지하는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금지된 책을 몰래 펼쳤고, 금지된 주문을 작은 방에서 외웠고, 금지된 질문을 다른 제자들에게 속삭였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고 간 것들, 사라진 아버지의 정체, 자신의 안에서 자라는 빛의 이름.
세라누스는 그녀의 위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도록 그녀를 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기원을 찾으려는 갈망은 법으로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엘리아나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마침내 탑의 가장 깊은 방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 그녀는 세 번째 원이 되었으며, 그것은 가장 젊은 세 번째 원으로 기록되었다. 그녀가 그 방에 들어간 날 밤,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탑의 가장 깊은 방은 책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그 방에는 오직 한 개의 거울이 있었고, 거울 앞에 한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거울 앞에 앉자, 거울은 그녀의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거울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의 장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천 년 전의 밤. 일곱 번째 왕좌가 내려오던 그 밤. 두 형제. 형의 결심. 동생의 잠. 어머니의 비움. 그리고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약속. 그 모든 것이 거울 속에서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다. 그녀는 천 년의 약속을 이어받은 가문의 마지막 직계였고, 그녀의 아들이 언젠가 그 왕좌의 이름이 될 것이었다.
그녀는 그 방을 떠날 수 없었다. 그녀는 세 시간 동안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나중에 그녀조차 완전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녀는 그 방에서 나오며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탑의 법이 금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탑의 세 번째 원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아이를 탑 안에서 기를 수는 없었다. 아이는 탑 바깥의 어느 곳으로 보내져 평범하게 자라야 했다. 그것은 탑의 스물일곱 개 조항 중 열다섯 번째 조항이었다.
엘리아나가 추방된 이유는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추방된 이유는, 그녀가 탑의 세 번째 원의 의무를 어기고, 자기 아이의 아버지를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닌 한 줄기 빛으로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천 년 전의 약속을 이어받는 가문의 여자로서, 그녀는 일곱 번째 왕좌가 잠들어 있는 그 빛의 한 조각을 자신의 몸 안에 받아들였다. 그 의식은 탑의 법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탑의 법보다 더 오래된, 가문의 법이었기 때문이다.
세라누스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아나에게 말했다.
"너는 탑의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너는 탑의 법 바깥의 어떤 것을 행했다. 그러나 그것이 탑의 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탑이 자기 자신보다 오래된 어떤 법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탑은 자신보다 오래된 것을 두려워한다. 탑은 너를 용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탑이 너를 용서하는 순간, 탑은 스스로의 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탑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너를 추방해야 한다."
엘리아나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의식을 준비할 때부터요."
"왜 그렇게 했느냐."
"저의 아들이 태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왕좌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 년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아이를 낳지 않으면, 왕좌는 영원히 잠든 채로 남아 세상에서 잊혀진 것들은 영원히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탑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천 년의 약속을 완성하기 위해 탑을 떠나는 것입니다."
세라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는 너를 막지 않겠다. 그러나 탑의 법은 나도 어길 수 없다. 너는 추방될 것이다. 추방의 형식을 치르는 날, 나는 너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나는 너를 기억하겠지만, 탑 앞에서는 너를 모른 척할 것이다. 네가 탑을 떠나는 날,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떠나기를. 그것이 나의 슬픔이자 너의 자유다."
추방의 날은 일주일 뒤였다.
엘리아나는 그 일주일 동안 탑의 가장 깊은 방에 다시 한 번 들어갔다.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서, 자신이 본 천 년 전의 장면을 머릿속 깊이 새겼다. 그녀는 그것을 종이에 옮겨 적을 수 없었다. 탑의 법에 따라, 그 방에서 본 것을 바깥으로 가져가려 하는 자는 추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추방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탑의 법이 아니었다.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자신이 그 장면을 잊어버릴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장면을 자신의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새겼다. 잊혀지지 않도록.
추방의 날, 그녀는 탑의 정문을 걸어나왔다. 그녀의 뒤에는 탑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세라누스는 약속한 대로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도 돌아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것은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의 방식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볼 권리를 포기하는 것.
엘리아나는 남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곧 방향을 돌려 북쪽으로 걸었다. 그녀의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의 몸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아이가 태어날 곳은 은빛 탑도, 남방의 도시도, 중앙의 평원도 아니었다. 그 아이는 북방에서 태어나야 했다. 왜냐하면 일곱 번째 왕좌의 동생은 세상의 가장 외진 곳, 세상이 가장 먼저 잊는 곳에서 자라나야 했기 때문이다. 잊혀짐을 몸으로 먼저 경험한 자만이 잊혀진 것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던 어느 밤, 작은 마을의 대장간 앞에 섰다. 화로의 붉은 빛이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한 번 크게 타오르고는 다시 고요해졌다. 엘리아나는 그 화로의 리듬이 자기 아이의 심장 박동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그녀가 이 대장간을 선택하게 된 표시였다.
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그 대장장이의 이름은 보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