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작가 · 하이 판타지 · 19화
목차
1. 프롤로그 - 잊혀진 예언 2. 1장 - 변방의 소년 3. 2장 - 붉은 달의 밤 4. 3장 - 은빛 탑으로 가는 길 5. 4장 - 잊혀진 길 6. 5장 - 어머니의 마지막 7. 6장 - 은빛 탑 8. 7장 - 다섯 날의 시험 9. 8장 - 형제의 얼굴 10. 9장 - 일곱 번째 왕좌 11. 에필로그 - 대장간의 불 12. 간주 1 - 천 년 전의 밤 13. 간주 2 - 보르의 화로 14. 간주 3 - 엘리아나의 추방 15. 간주 4 - 미라엘의 첫 순례 16. 간주 5 - 침묵의 기사단의 기원 17. 외전 1 - 동방의 돌 18. 외전 2 - 미라엘의 다음 길 19. 외전 3 - 한바르의 기록4장 — 잊혀진 길
잊혀진 길의 첫 번째 규칙은,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미라엘은 강을 건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앞서 걷고 있었고, 루나가 그녀의 옆구리에 바짝 붙어 있었으며, 카엘은 그들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길은 갈대밭을 벗어나 낮은 구릉지대로 접어들었다. 구릉 위로는 헐벗은 관목이 드문드문 서 있었고, 그 관목들의 그림자가 묘하게 어긋난 방향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태양은 분명 그들의 오른편에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는 오른편에도, 왼편에도 생기지 않았다. 관목의 그림자들은 하나같이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북쪽, 그들이 방금 떠나온 방향.
"이게 잊혀진 길의 첫 번째 얼굴이에요."
미라엘이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이 길에서는 그림자가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여요. 대부분은 북쪽, 즉 과거를 가리키죠. 그림자는 기억을 좋아해요. 그래서 뒤돌아보면 안 돼요. 한 번 뒤돌아보면, 당신의 그림자가 당신의 몸을 남겨두고 북쪽으로 걸어가 버려요. 그리고 그림자 없는 사람은,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없어요."
카엘은 침을 삼켰다. 그는 눈앞의 미라엘의 등을 응시했다. 그녀의 등에 드리운 그림자조차 방향이 틀려 있었다. 그림자는 그녀의 앞이 아니라 뒤로, 카엘의 발밑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태양의 위치와는 전혀 맞지 않는 그림자였다. 카엘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그림자도 뒤로, 카엘이 방금 지나온 발자국을 향해 뻗어 있었다.
해는 여전히 중천에 가까웠으나, 시간은 묘하게 흐트러지고 있었다. 카엘이 다섯 걸음을 걸었다고 느꼈을 때 주변의 관목이 스무 걸음만큼 멀어져 있었고, 스무 걸음을 걸었다고 느꼈을 때 관목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공간이 그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그를 속이고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규칙."
미라엘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이 길에서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지 마세요. 당신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는, 당신의 이름을 빌려 당신의 몸을 빌려가려 해요. 대답하는 순간 당신은 이 길에 묶이게 돼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까."
"자주는 아니에요. 그러나 오늘처럼,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막 호명되기 시작한 날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평소보다 열 배쯤 높아져요. 당신의 이름은 지금 아주 신선한 냄새를 풍기고 있어요. 이 길의 오래된 것들이 그 냄새를 맡고 깨어나고 있을 거예요."
카엘의 왼손등에서 성흔이 뜨겁게 고동쳤다. 마치 그의 피부 아래에서 누군가가 북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으로 그 위를 덮었다. 장갑을 다시 끼고 싶었으나, 이상하게도 장갑을 끼면 성흔이 더 아프게 고동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였다.
카엘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엘."
그것은 보르의 목소리였다. 늙은 대장장이 보르, 십 년 동안 그를 키워준 그 사람의 목소리. 거칠고 따뜻한, 화로 앞에서 잠든 카엘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던 그 목소리. 카엘의 발이 저절로 멈췄다. 그의 심장이 뒤를 돌아보라고 외치고 있었다. 보르가 살아 있다. 보르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쫓아왔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
"카엘아. 잠깐만. 잠깐만 멈춰다오."
목소리는 더 가까워졌다. 숨이 가쁜 목소리였다. 늙은 몸으로 긴 길을 달려온 자의 숨소리. 카엘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그는 이미 뒤돌아보려고 목을 반쯤 틀고 있었다.
그 순간 미라엘이 멈춰 서며 뒤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이 카엘의 손목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대답하지 마세요. 뒤돌아보지도 마세요. 저것은 보르가 아니에요."
카엘의 입술이 떨렸다.
"어떻게 압니까. 당신은 보르를 모르잖아요."
"저는 모르지만, 이 길을 알아요. 이 길이 당신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목소리를 고른 거예요. 당신이 가장 그리워하는 목소리, 당신이 가장 미안해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로 당신을 유혹하는 거예요. 당신이 그 목소리를 향해 한 걸음이라도 돌아가면, 당신의 그림자가 북쪽으로 걸어가 버려요."
카엘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뺨을 타고 흐르다가 턱에서 얼어붙었다. 북방의 눈물이었다. 남방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도, 그의 눈물은 여전히 얼어붙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내디뎠다. 그다음 한 걸음을. 그다음 한 걸음을.
등 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 어떤 긴 한숨 같은 소리로 사라졌다. 그 한숨 속에는 원망도 슬픔도 없었다. 다만 오래된 피로만이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흉내 낸 목소리가 아니라, 진짜 보르의 영혼이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 같기도 했다.
카엘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구릉을 넘어 그들은 숲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숲은 잎이 붉은 나무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계절은 가을이 아니었고, 나무들은 병든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본래 붉은 잎을 가진 나무들이었다. 카엘은 그런 나무를 이야기로만 들어본 적이 있었다. 남방의 아주 깊은 곳에서만 자란다는 '피나무'. 그 나뭇잎으로 담근 술은 마시는 자의 잊고 싶은 기억을 하루 동안 지워준다고 했다.
"이제 잊혀진 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규칙."
미라엘이 숲의 경계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그녀는 카엘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구릉을 넘어오는 동안 조금 창백해져 있었다.
"이 숲 안에서는, 당신의 생각이 당신을 해칠 수 있어요.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당신 앞에 나타나고, 당신이 원하는 것이 당신 앞에 나타나요. 둘 다 위험해요. 두려움은 당신을 얼어붙게 만들고, 원함은 당신을 붙잡아 놓아요. 이 숲을 통과할 때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세요. 걷는다는 행위. 걷는다는 사실. 그 외의 모든 것은 이 숲에게 먹이가 돼요."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말을 아끼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북방에서 그는 말을 아끼는 법을 배웠으나, 그것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 길 위에서 그는 말을 아끼는 것이 자신 안의 무언가를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피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붉은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채로 나무 위에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람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나뭇잎을 스쳐가지 않고 나뭇잎을 뚫고 지나갔다. 잎은 바람의 통로가 되어 있었고, 바람은 잎의 존재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잎과 바람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카엘은 오직 걸었다. 걷는다는 생각만을 했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촉,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는 감촉, 그 단순한 두 가지 감촉만을 느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생각이 오히려 더 커진다는 것을. 그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있을지. 살아 있을지. 피나무의 어딘가에서, 흐릿한 형상으로 어머니가 나타날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숲의 안쪽에서 흰 머리카락이 보였다.
카엘의 걸음이 다시 멈춰질 뻔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라엘의 손이 아니라 카엘 자신의 의지가 그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그는 보르의 목소리에게서 배운 것이다. 가장 그리운 것은 이 길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눈을 내리깔고 땅만 보며 걸었다. 흰 머리카락의 형상은 그의 시야 주변에서 한참을 어른거리다가, 결국 바람 없는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그 형상이 사라질 때, 카엘은 자신의 왼손등의 성흔이 한 차례 날카롭게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 고동은 슬픔의 고동이었다. 어머니의 진짜 영혼이 아들의 걸음을 응원하며 남기고 간, 아주 작은 흔적.
그들은 피나무 숲을 사흘에 걸쳐 통과했다.
숲을 벗어났을 때, 카엘은 자신이 이 길에 들어오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만 눈빛이 조금 더 깊어져 있었고, 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이름에 대답하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숲의 끝에서 미라엘이 남동쪽을 가리켰다. 지평선 너머로 아주 희미한 은빛 한 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그것은 탑이었다. 그러나 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높았고, 건축물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저기가 은빛 탑이에요. 약속한 대로, 저는 여기까지예요."
카엘은 미라엘을 바라보았다. 사흘을 함께 걸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사흘이 십칠 년보다 더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어디로 갑니까."
"저는 제가 가야 할 다른 잊혀진 것을 찾으러 가요. 언젠가, 당신이 탑에서 내려오는 날이 오면, 우리는 다시 만날지도 몰라요. 그때 루나가 당신을 먼저 알아볼 거예요."
푸른 눈의 짐승이 카엘을 올려다보았다. 카엘은 처음으로 무릎을 굽혀 그 짐승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루나의 털은 예상보다 부드러웠다. 북방의 눈처럼 차갑지도, 남방의 햇빛처럼 뜨겁지도 않았다. 딱 사람의 체온 같은 온도였다.
"고맙습니다."
카엘이 말했다. 그것은 그가 북방에서 태어나 남방으로 내려온 이후 처음으로 입 밖에 낸 고맙다는 말이었다. 북방에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고마움은 침묵 속에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침묵이 아닌 소리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미라엘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작별의 미소였으나, 영원한 작별은 아니었다.
"살아요, 카엘."
그녀는 그의 이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렀다. 이 길 위에서, 이 길이 가장 경계하는 그 호명의 방식으로.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가 부른 그의 이름은 위험하지 않았다. 그것은 축복이었다.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혼자서, 마지막 사흘을 걷기 시작했다. 은빛 탑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