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nta

천서의 아이 공개

by 영이 · 다크 판타지 ·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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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 전 3권 다크 판타지 · 정체성 각성과 성장

천서의 아이

몰락한 문자 마법사 가문의 딸이 금지된 힘을 각성해 권력자의 음모에 맞서지만, 가문을 살리려는 집착이 그녀를 위험에 빠트리고 결국 가문 복권이라는 목표 너머, 자신의 주체적 선택으로 왕조의 운명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걷는다.

6. 임사홍의 검은 그림자

창백한 얼굴, 가늘게 떨리는 손. 며칠 밤낮으로 수련을 거듭하며 천서각에서 돌아온 윤아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윤아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할머니의 변화를 직감했다. 할머니의 뺨은 종잇장처럼 얇아져 있었고,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깊고 공허했다. 윤아가 생술을 사용할 때마다 느꼈던 그 생명력 소모의 흔적이 할머니의 온몸에 역력했다.

“할머니!”

윤아는 다급하게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할머니의 손을 잡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전해졌다. 손목의 맥박은 실처럼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윤아는 온몸에 퍼지는 불안감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윤아야… 왔구나.”

할머니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연약했다. 윤아는 할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왜 이렇게….”

목소리가 떨려왔다. 할머니는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그저… 조금 지쳤을 뿐이니.”

할머니의 말은 윤아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윤아는 자신이 생술을 무리하게 사용했을 때 느꼈던 고통과 생명력의 소모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과거에 생술을 무리하게 사용해 수명이 단축되었다고 했다. 지금의 할머니의 모습은 그때의 대가가 다시 찾아온 것만 같았다.

“할머니… 제 생술로….”

윤아는 손끝에 푸른빛을 모았다. 내공 천서력의 힘을 이용해 할머니를 치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윤아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할머니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윤아는 할머니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윤아를 침상 옆에 앉혔다.

“윤아야, 천서력은 위대한 힘이다. 하지만 동시에… 큰 대가를 요구하는 힘이기도 하지.”

할머니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윤아의 심장을 울렸다.

“너는 이제 막 천서력의 문을 열었을 뿐이다. 아직 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힘이지.”

윤아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천서각에서 생술을 수련하며 느꼈던 무력감이 다시 밀려왔다. 생명을 살리는 아름다운 힘인 생술은 동시에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무서운 대가를 요구했다.

“할머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아는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할머니의 눈빛은 깊은 지혜를 담고 있었다.

“너의 힘을 믿고, 너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거라.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너의 힘을 노리는 자들이 많으니.”

할머니의 말에 윤아는 임사홍의 얼굴을 떠올렸다. 임사홍은 윤아의 가문 복권을 돕는 대신 천서력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했다. 연산군 또한 천서력 혈통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천서력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려 했다.

“할머니… 임사홍과 연산군은….”

윤아는 말을 흐렸다. 할머니는 윤아의 마음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천서력을 탐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손에 천서력이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윤아는 할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

“제가 막을 거예요. 할머니를 지키고, 천서력을 지킬 거예요.”

윤아의 눈빛에는 강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윤아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래… 너는 천서의 아이다. 너는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의 말은 윤아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윤아는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할머니의 몸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윤아는 할머니의 온기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윤아는 할머니의 침상 곁을 지켰다. 할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 윤아는 잠들 수 없었다. 자신이 천서각에서 겪었던 일들과 할머니의 모습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천서력은 위대한 힘이지만, 동시에 큰 대가를 요구하는 힘이었다. 윤아는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다음 날 아침, 윤아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충격에 휩싸였다. 할머니의 얼굴은 밤새 더욱 창백해져 있었고, 숨소리는 더욱 가늘어졌다. 윤아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어제보다 더 차가웠다.

“할머니…!”

윤아는 다급하게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윤아는 할머니의 맥박을 짚었다. 맥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윤아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안 돼… 할머니…!’

윤아는 손끝에 푸른빛을 모았다. 이제는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윤아는 내공 천서력의 힘을 이용해 할머니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기운이 손끝으로 모여 할머니에게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몸속에서 거대한 문양이 고동치며 에너지를 뿜어냈다.

푸른빛이 할머니의 몸을 감쌌다. 할머니의 창백했던 얼굴에 미약하게나마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윤아는 계속해서 천서력에 집중했다. 온몸의 힘을 다해 할머니를 치유했다. 하지만 윤아의 몸은 점점 더 지쳐갔다. 생명력이 소모되는 고통이 다시 밀려왔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윤아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천서력에 집중했다. 할머니의 숨소리가 조금씩 안정되고, 맥박이 조금씩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서대비! 문을 열어라!”

낯선 목소리에 윤아는 깜짝 놀랐다. 윤아는 서둘러 천서력을 거두었다. 푸른빛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윤아는 할머니를 이불로 덮어주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누구시오!”

윤아는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낯선 사내들이 윤아의 집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살벌했고,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윤아는 직감했다. 임사홍의 병사들이었다.

“서윤아! 네가 서윤아인가!”

한 사내가 윤아에게 다가와 외쳤다. 윤아는 뒷걸음질 쳤다.

“무슨 일이시오!”

“서대비는 어디 있는가! 어서 나오라 일러라!”

사내는 윤아를 밀치고 집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윤아는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할머니는 편찮으시오! 함부로 들어올 수 없소!”

“편찮다고? 웃기는 소리! 당장 서대비를 내놓지 않으면…!”

사내는 윤아를 위협하듯 칼을 뽑아 들었다. 윤아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지만, 할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물러서지 않았다.

“함부로 칼을 휘두르지 마시오! 이곳은 양반가의 집이오!”

윤아의 말에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양반가? 웃기는 소리! 너희 가문은 이미 몰락한 지 오래! 이제 더 이상 양반가가 아니다!”

사내의 말에 윤아는 치를 떨었다. 가문 복권에 대한 집착이 다시 밀려왔다. 윤아는 손끝에 천서력을 모았다. 풍술을 이용해 사내들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윤아의 몸은 아직 생술의 대가로 지쳐 있었다.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듯 무력감이 밀려왔다.

그때였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란인가.”

윤아는 뒤를 돌아보았다. 임사홍이었다. 임사홍은 병사들을 헤치고 윤아의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임사홍 대감!”

사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임사홍은 윤아에게 다가왔다.

“서윤아 아가씨, 오랜만이로군.”

임사홍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윤아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대감께서는 어찌하여 이곳에….”

윤아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임사홍은 미소 지으며 윤아의 집 안을 훑어보았다.

“서대비를 만나러 왔지. 그분이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네만.”

임사홍의 말에 윤아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임사홍이 할머니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어찌하여 대감께서 할머니의 상태를….”

윤아는 임사홍을 노려보았다. 임사홍은 태연하게 웃었다.

“나는 자네 가문에 관심이 많네. 특히 서대비 마마께서는… 천서력을 다루는 마지막 혈통이 아니던가.”

임사홍의 말에 윤아는 경악했다. 임사홍이 천서력의 존재와 할머니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니! 윤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대감께서 어찌…!”

“놀랄 것 없네. 나는 자네 가문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지. 천서력은 위대한 힘. 그 힘을 연산군 전하께 바친다면… 자네 가문은 다시 복권될 수 있을 걸세.”

임사홍은 윤아에게 달콤한 유혹을 던졌다. 윤아는 가문 복권이라는 말에 흔들리는 자신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임사홍의 말이 너무나 위험하게 들렸다. 천서력은 세상을 치유하고 보호하는 힘이었다. 그 힘을 연산군의 손에 넘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대감의 제안은….”

윤아는 말을 흐렸다. 임사홍은 윤아의 마음을 읽은 듯 미소 지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겠네.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아. 서대비 마마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니 말이야.”

임사홍의 말에 윤아는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할머니는 생술의 대가로 생명력이 소모되어 가고 있었다. 윤아는 할머니를 치유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병을 고칠 방법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오.”

임사홍은 윤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승리감에 차 있었다. 윤아는 임사홍의 말에 충격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