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작가 · 하이 판타지 · 19화
목차
1. 프롤로그 - 잊혀진 예언 2. 1장 - 변방의 소년 3. 2장 - 붉은 달의 밤 4. 3장 - 은빛 탑으로 가는 길 5. 4장 - 잊혀진 길 6. 5장 - 어머니의 마지막 7. 6장 - 은빛 탑 8. 7장 - 다섯 날의 시험 9. 8장 - 형제의 얼굴 10. 9장 - 일곱 번째 왕좌 11. 에필로그 - 대장간의 불 12. 간주 1 - 천 년 전의 밤 13. 간주 2 - 보르의 화로 14. 간주 3 - 엘리아나의 추방 15. 간주 4 - 미라엘의 첫 순례 16. 간주 5 - 침묵의 기사단의 기원 17. 외전 1 - 동방의 돌 18. 외전 2 - 미라엘의 다음 길 19. 외전 3 - 한바르의 기록5장 — 어머니의 마지막
북방은 자신의 딸이 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엘리아나가 카엘을 남쪽으로 보낸 그 순간부터, 북방의 공기는 그녀를 중심으로 천천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눈은 위로 솟아올랐고, 바람은 그녀의 손짓을 따라 방향을 바꾸었으며, 얼어붙은 강은 얼음 아래에서 오래된 노래를 한 마디씩 토해냈다. 북방은 그녀가 태어났으나 제대로 살지 못한 땅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땅은 자신의 딸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 모든 숨을 모으고 있었다.
엘리아나는 혼자 서 있었다. 케이른 마을의 북쪽, 고목이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는 언덕 위에서. 그녀의 발밑에는 누군가가 오래전에 새긴 원 하나가 있었다. 원은 돌로 만들어져 있었고, 돌의 가장자리에는 고대의 룬이 일곱 개 새겨져 있었다. 일곱 개의 룬 중 여섯 개는 이미 빛을 잃은 상태였고, 오직 한 개만이 희미하게 맥박치고 있었다. 일곱 번째 룬. 잊혀진 왕좌의 룬.
그녀는 그 원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은빛 탑의 세 번째 원의 엘리아나다."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북방의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오늘 밤, 내가 가진 모든 마법을 이 땅에게 돌려준다. 나의 이름도, 나의 기억도, 나의 심장박동도. 나는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이 땅이 나의 아들을 기억하지 않기를. 그가 이 땅을 떠나 남쪽으로 흘러갈 때, 이 땅이 그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주기를."
북방이 대답했다. 대답은 말의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방식이었다. 그녀가 서 있는 원을 중심으로, 북방의 바람이 이제부터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카엘의 발자국을 지웠고, 카엘이 자고 일어난 눈 위의 오목한 자국을 채웠고, 카엘이 남긴 모든 냄새를 공기에서 씻어냈다. 침묵의 기사단이 추적할 수 있는 모든 단서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회색 망토들이 언덕 아래에 도착했다.
그들은 열두 명이었다. 처음 케이른 마을에 나타났던 세 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그들의 선두에 선 자는 망토를 두르지 않았다. 대신 검은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그 갑옷의 가슴에는 침묵의 기사단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부러진 혀. 말을 잃은 입. 그것이 침묵의 기사단의 문양이었다.
"엘리아나."
검은 갑옷의 남자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다. 협박하는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래된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는 자의 목소리였다. 엘리아나는 그 부드러움이 이 남자의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소. 당신의 아들을 위한 마지막 마법. 훌륭한 선택이오. 우리 주인께서도 당신의 그 결단을 존경하실 것이오. 그러나 슬프게도 그 마법은 완성되지 못할 것이오. 왜냐하면 당신이 그 원 안에 서 있는 지금, 이미 당신은 우리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오."
엘리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주문을 시작하고 있었다. 입술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으나, 돌 원 안의 일곱 번째 룬이 점점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엘리아나. 시간이 아직 있소. 나는 오늘 당신의 생명을 가져가기 위해 온 것이 아니오. 나는 당신의 기억을 가져가기 위해 왔소. 기억만이오. 당신이 십 년 동안 숨겨온 그 아이의 이름, 그 아이의 얼굴, 그 아이의 냄새. 그것만 우리에게 주시오. 그러면 당신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소. 당신이 태어난 은빛 탑으로. 당신을 추방한 그 탑이 다시 당신을 받아줄 것이오. 우리 주인께서는 그럴 힘이 있으시오."
엘리아나의 입술이 처음으로 열렸다. 그녀는 웃었다. 그녀가 십 년 만에 웃는 웃음이었다.
"너는 여전히 같은 말을 하는구나, 카이라스."
검은 갑옷의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의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이 그를 약간 긴장하게 만든 것 같았다.
"너는 예전에도 나에게 같은 제안을 했었다. 천 년 전에. 일곱 번째 왕좌가 호명되기 직전의 그 밤에. 그때도 너는 나의 기억만을 원했고, 나의 생명을 약속했었지. 나는 그때 너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 대가로 너는 나의 이름을 빼앗아갔다. 기억하느냐."
카이라스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당신은 헛소리를 하고 있소. 천 년 전이라니. 당신은 마흔을 넘기지 않은 여자요."
"내가 이 몸에 살기 시작한 것은 서른두 해 전이다. 그러나 내 안의 기억은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지.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카이라스. 그러나 나는 너를 알아본다. 네가 이 몸으로 바꿔 입은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도 안다. 네 주인이 너에게 준 '긴 수명'이라는 선물이, 사실은 너에게서 매번 얼굴을 빼앗아가는 형벌이라는 것도."
카이라스의 손이 검 손잡이로 향했다. 그러나 엘리아나가 서 있는 돌 원은 이미 완전히 빛나고 있었다. 일곱 개의 룬이 전부 깨어나 있었다. 여섯 개의 죽은 룬조차 엘리아나의 마법 앞에서 잠시 빛을 되찾고 있었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마법이다, 카이라스. 그러나 이 마법이 지우는 것은 내 아들의 흔적만이 아니다. 이 마법은 오늘 이 언덕 위에 있는 모든 생명의 기억에서, 지난 열흘간의 기록을 지워낸다. 너희가 북방에서 내 아들을 쫓았던 그 열흘. 너희가 케이른 마을에서 보르를 죽이고 대장간에 불을 지른 그 하루. 너희가 이 순간 이 언덕 위에 있다는 사실조차. 너희는 이 땅을 떠나는 순간, 자기들이 왜 북방까지 왔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의 주인에게 돌아갔을 때, 너희는 빈손일 뿐 아니라 빈 머리일 것이다."
카이라스의 얼굴이 처음으로 공포로 물들었다.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소."
"존재한다. 다만 그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천 년 동안 아무도 쓴 적이 없을 뿐이다. 그 대가는 이렇다. 마법을 쓰는 자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 기억뿐 아니라 이름도, 얼굴도, 영혼의 형태도. 너희에게서 기억을 지우는 대신, 나는 나 자신을 지운다. 오늘 이후로 이 세상에는 엘리아나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기억하는 어떤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를 입 밖에 낼 수 없을 것이다. 내 아들조차도 나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겠지만, 그 어머니의 얼굴과 목소리는 흐릿한 꿈처럼 그의 마음 어딘가에 가라앉을 것이다."
"어째서."
카이라스가 처음으로 인간다운 떨림을 목소리에 담았다.
"어째서 그런 값을 치르는 것이오. 당신의 아들 한 명을 위해서."
엘리아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붉은 달이 지평선에서 막 떠오르고 있었다.
"한 명이 아니다, 카이라스. 일곱 번째 왕좌를 위해서다. 천 년 전 너희가 침묵시킨 그 왕좌가, 내 아들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다시 부를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지키기 위해 태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을 지키기 위해 사라진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남기는 단 하나의 의미다."
그녀는 손을 들었다.
카이라스가 검을 뽑았다. 그의 뒤의 열한 명의 회색 망토도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들은 언덕 위의 원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들의 검이 햇빛을 받으며 그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엘리아나가 손을 내리는 순간, 북방 전체가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눈이 공중으로 솟아올랐고, 바람이 멈췄고, 시간이 잠시 정지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돌 원이 부서졌다. 일곱 개의 룬이 부서지며 하늘로 흩어졌다. 붉은 달의 빛이 원이 있던 자리를 관통해 땅속 깊은 곳까지 박혔다. 그 빛이 박힌 자리에서 흰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북방에서는 자랄 수 없는 종류의 꽃이었다.
카이라스와 열한 명의 기사는 그 빛 속에 서 있었다. 그들의 몸은 상처 하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기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이 언덕 위에 있는지, 누구를 쫓아 왔는지,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잊어가고 있었다. 잊어가는 동안 그들의 얼굴은 점점 평범한 사람의 얼굴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카이라스의 검은 갑옷조차 천천히 낡은 여행자의 외투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빛이 사라졌을 때, 언덕 위에는 열두 명의 혼란스러운 여행자들만이 서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기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한가운데에 있던 작은 돌 원 자리에는, 흰 꽃 한 송이만이 피어 있었다.
엘리아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사라졌다. 완전히. 그녀의 몸도, 그녀의 이름도, 그녀의 마지막 숨결조차도. 다만 그녀가 피워낸 흰 꽃 한 송이만이, 붉은 달빛 아래에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꽃의 꽃잎 일곱 장이 바람에 떨릴 때마다, 아주 작은 별빛 같은 것이 흩어져 하늘로 올라갔다.
그 별빛들은 남쪽으로 흘러갔다. 은빛 탑을 향해 걸어가는 한 소년의 머리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으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이, 별빛의 형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