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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각인: 왕좌의 기억 공개

by 이작가 · 하이 판타지 ·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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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 전 19권 하이 판타지 · 잊혀진 운명의 재림

파멸의 각인: 왕좌의 기억

몸에 새겨진 '잊힌 예언의 각인'과 함께 태어난 '잊혀진 자' 카엘. 자신을 쫓는 제국 심판관의 추적을 피하며, 그는 예언이 단순한 구원이 아닌, 세상을 뒤흔들 파멸이자 동시에 잊혀진 왕좌의 재림을 예고하는 최후의 경고임을 깨닫는다.

7. 6장 - 은빛 탑

6장 — 은빛 탑

카엘은 홀로 걸어 은빛 탑에 도착했다.

미라엘과 헤어진 뒤로 사흘이었다. 그 사흘은 이상하게 평온했다. 잊혀진 길의 숲을 벗어난 뒤부터 바람은 정상적인 방향으로 불었고, 그림자는 태양의 반대편에 생겼으며, 그의 이름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마치 그가 건너온 그 숲이 북방과 남방 사이를 가르는 가장 마지막 경계였던 것처럼. 그러나 카엘은 알고 있었다. 이 평온함은 진짜 평온이 아니라, 무언가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유예일 뿐임을.

은빛 탑은 멀리서 본 것보다 가까이서 볼 때 더 낯설었다.

그것은 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높았다. 지평선에서 하늘까지 이어진 한 줄기 은빛 섬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빛이 아니라 건축물이었다. 거대한 돌이 하늘을 향해 쌓여 있었고, 그 돌의 표면은 햇빛을 받지 않는 각도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탑의 꼭대기는 보이지 않았다. 구름을 뚫고 그 위로 얼마나 더 높이 솟아 있는지, 카엘의 눈으로는 가늠할 수 없었다.

탑의 입구에는 문이 없었다. 그 대신 돌벽에 일곱 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동심원의 한가운데에 작은 틈이 있었다. 카엘이 틈 앞에 서자, 그의 왼손등의 성흔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 한가운데의 작은 별이 틈을 향해 한 번 반짝였고, 그러자 틈이 저절로 벌어지며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문이 되었다.

카엘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탑 안은 바깥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으로 흐르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오후였으나, 탑 안에는 새벽과 저녁이 동시에 존재했다. 천장은 보이지 않았고, 벽은 있으나 손으로 만질 수는 없었다. 바닥만이 분명했다. 검은 돌로 된 바닥. 그 바닥 위에 한 노인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카엘은 걸음을 멈췄다. 노인의 목소리는 깊었으며, 그 깊이 속에는 수십 년의 침묵과 수십 년의 가르침이 함께 녹아 있었다. 카엘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세라누스 스승님이십니까."

노인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일흔일 수도 있었고 백 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나이를 넘어선 어떤 것이었다. 그 눈은 카엘을 보자마자 가늘어졌다. 이해했다는 눈빛이 아니라, 확인했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네 어머니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너의 스승이 될 것이다. 네가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카엘은 품에서 기억의 나침반을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세라누스는 나침반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 위에 손을 가볍게 얹었을 뿐이다. 그 순간 나침반 한가운데의 작은 별이 꺼졌다. 카엘은 놀라 뒤로 물러섰다.

"놀라지 마라. 나침반은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나침반은 너를 이곳까지 데려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너는 이제 나침반이 필요하지 않다. 너의 기억이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의 기억이라니요. 저에게는 찾아야 할 기억이 없습니다."

세라누스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애정과 연민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카엘.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십칠 년의 기억은 너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이 세상에서 이 몸으로 살기 시작한 이후의 기록일 뿐이다. 네 안에는 훨씬 더 오래된 기억이 있다. 일곱 번째 왕좌가 너를 통해 기억되려 하는 그 기억이다. 너는 그것을 지금은 느끼지 못하지만, 앞으로 닷새 동안 너는 그것을 배울 것이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카엘의 왼손등의 성흔이 다시 고동쳤다. 이번에는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 같았다.

"저의 어머니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는 물었다. 이 질문을 하기 위해 이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으나, 이 질문을 하지 않고는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세라누스의 눈이 잠시 흐려졌다. 그는 대답 대신 탑의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벽에서 빛이 한 줄기 새어 나오더니, 공중에 작은 형상 하나를 만들었다. 흰 꽃 한 송이였다. 카엘은 그 꽃을 본 적이 없었으나, 보자마자 그 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네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 돌려주었다. 그 대가로 그녀는 너의 추격자들에게서 너의 모든 흔적을 지웠다. 너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이다. 카엘. 아무도 너를 쫓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너를 쫓던 자들조차 자기들이 무엇을 쫓았는지 잊었다. 다만 한 사람만이 너를 여전히 기억한다. 이 세상의 모든 이름을 지운 그 마법에서도 벗어난 단 한 사람. 침묵의 기사단의 주인. 그는 너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너를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너와 그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같은 뿌리라니요."

"그것은 닷새 뒤에 말해주마. 지금 네가 그 사실을 알면, 너는 탑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너는 무너질 것이다. 나는 너를 무너뜨릴 수 없다. 네 어머니가 너를 나에게 보낸 이유는, 내가 너를 무너뜨리지 않고 깨우는 방법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카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물음표를 삼키는 법을 그는 이 여정을 통해 충분히 배웠다. 그 대신 그는 고개를 숙였다.

"가르쳐주십시오."

세라누스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몸은 생각보다 컸다. 앉아 있을 때는 작아 보였으나, 일어서자 그는 카엘보다 머리 하나 이상 컸다. 그의 망토는 색을 특정할 수 없었다. 회색 같기도, 푸른색 같기도, 은색 같기도 했다. 그 망토의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룬 문자들이 끊임없이 흘러 다니고 있었다. 망토 자체가 일종의 살아 있는 글자로 짜여 있는 것 같았다.

"닷새간의 시험은 이렇다. 첫째 날, 너는 침묵을 배운다. 둘째 날, 너는 말을 배운다. 셋째 날, 너는 망각을 배운다. 넷째 날, 너는 기억을 배운다. 다섯째 날, 너는 일곱 번째 왕좌 앞에 선다."

"왕좌가 여기 있습니까."

"왕좌는 장소가 아니다. 왕좌는 상태다. 그것은 네가 너 자신을 온전히 기억하는 순간, 너의 안에 나타난다. 너의 심장 속에, 너의 이름 속에, 너의 성흔 속에."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세라누스를 따라 탑의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탑의 안쪽에는 계단이 없었다. 그 대신 공간이 그들에게 맞추어 스스로 펼쳐졌다. 걷는 대로 바닥이 나타났고, 바닥이 나타나는 대로 벽이 따라왔다. 마치 탑 전체가 살아 있는 생물의 내부를 걸어가는 것 같았다.

첫째 날의 방에 도달했을 때, 세라누스는 멈추었다. 그 방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있었다. 어둠 속에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방에서 하루 동안 앉아 있어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네가 하루를 다 보냈다고 느낄 때, 문이 저절로 열릴 것이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너는 아직 하루를 다 보내지 않은 것이다."

카엘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없었다. 다만 그의 뒤에서 어둠이 조금 더 짙어졌을 뿐이었다.

그는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십칠 년 동안 배워온 북방의 침묵을, 처음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북방에서 그의 침묵은 보호의 침묵이었다. 그러나 이 방의 침묵은 다른 종류였다. 이 방의 침묵은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한 침묵이었다.

그렇게 그는 은빛 탑의 첫째 날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동안, 탑의 가장 꼭대기에서는 세라누스가 하늘을 바라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가 왔다. 마침내 그가 왔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이다. 시간과, 닷새 후의 충돌뿐이다."

그의 말이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남쪽의 첨탑 뒤에 숨어 있는 누군가의 귀에 닿았다. 닿은 순간, 그 누군가는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천 년 만에 처음으로 웃는 웃음이었다.